오주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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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는 다는 것은 / 단순히 폭과 길이가 / 같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

  오늘 아침, / 내 발 사이즈에 맞는 / 250미리 새 구두를 신었는데 / 하루 종일 / 발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어요. 맞지 않아요. //

  맞는다는 것은 사이즈가 같음을 말하는데 아닌가 봅니다. / 어제까지 신었던 신발은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어요. //

  맞는다는 것은 어쩌면 / 조금 헐거워지는 것인지 모릅니다 / 서로 조금 헐거워지는 것, / 서로가 서로에게 편안해지는 것, /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는 게지요. //

  이제, 나도 헐거워지고 싶어요 / 헌 신발처럼 낡음의 평화를 갖고 싶어요 / 발을 구부리면 함께 구부러지는 / 헐거운 신발이 되고 싶어요 //

  - 박상천, ’헐거워짐에 대하여

 

  아내는 내게 종종 일 중독자라거나 원칙주의자라는 소리를 하곤 합니다. 때로는 더없이 보수적이라며 오래 전부터 옹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자신에게는 더없이 냉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내에게는 고리타분하고 융통성 없는 진부한 모습으로 비쳐진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남편과 사는 것이 정말 피곤하다는 하소연인 것입니다.

 

  진지하고 팽팽한 긴장으로 살아야 잘 사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헤픈 웃음으로 적당히 사는 것은 큰 잘못을 저지르는 걸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둘 나이를 먹으며, 산다는 게 그런 것이 아닌 줄 진작 눈치챘지만 몸에 벤 습관을 벗어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헐거워지고 싶다는 시인의 노래가 꼭 나를 향해 건네는 노래인 양 마음에 와 닿습니다.

 

  맞는다는 것은 지식과 이론으론 단순히 폭과 길이가 꼭 들어맞는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시인의 귀띔대로 실제 신을 신고 걸어보면 폭과 길이만 맞는다고 맞는 신발이 아닙니다. 거기엔 발의 움직임이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맞는다는 말은 움직임이라는 생명현상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라는 틀에 자기를 가두고, 그것도 모자라 남까지 가두려했던 바리새인들을 호되게 꾸짖으셨던 님의 모습이 이젠 이해가 갑니다.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생명현상을 감안한 넉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하늘나라를 사는 길임을 일러주신 게지요. 실수 없는 사람이 없고, 때때로 일탈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본질상 죄인이라는 기독교 교리에 담긴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지 않고는 결코 사랑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신 게지요.

 

  이제, 나도 헐거워지고 싶어요 / 헌 신발처럼 낡음의 평화를 갖고 싶어요 / 발을 구부리면 함께 구부러지는 / 헐거운 신발이 되고 싶어요 //

 

  물론 그렇다고 무작정 큰 신발을 사서 처음부터 헐겁게 신을 수는 없습니다. 세월 따라 더 헐거워질 신발은 오히려 훌러덩 벗겨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일단 신어봐야지요. 일단 살아봐야 합니다. 이왕이면 여유 있는 신을 찾아 신되, 불편하더라도 한동안 걸어볼 일입니다. 구부리면 함께 구부러지는 헐거운 신발의 평화를 살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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