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한카


구르는 것이 일생인 삶도 있다 

구르다가 마침내 가루가 되는 삶도 있다 

가루가 되지 않고는 온몸으로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뜨겁게 살 수 있는 길이야 알몸밖에 더 있느냐

알몸으로 굴러가서 기어코 핏빛 사랑 한 번 할 수 있는 것이야

맨살밖에 더 있느냐

맨살로 굴러가도 아프지 않은 게

돌멩이밖에 더 있느냐

이 세상 모든 것, 기다리다 지친다 했는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지치지 않는 게 돌밖에 더 있느냐

 

빛나는 생이란 높은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치열한 삶은 가장 낮은 데 있다고

깨어져서야 비로소 삶을 완성하는

돌은 말한다

구르면서 더욱 단단해지는 삶이,

작아질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삶이 뿌리 가까이 있다고

깨어지면서 더욱 뭉쳐지는 돌은 말한다

 

  - 이기철, '돌에 대하여'

 

 

  텃밭이라고 하기엔 한참 쑥스러운 뒷마당에도 깻잎, 고추, 부추 등을 조금씩 심었습니다. 한여름 무더위를 틈타 사이 사이로 성가신 잡초가 끊이지 않습니다. 잡초를 솎아내며 더러 발견되는 돌멩이도 늘 함께 골라냅니다. 잡초는 쓰레기통으로, 돌멩이는 저만치 멀찍이 던져내곤 참 성가시다며 손바닥을 털곤 했습니다. 헌데 멋드런지 시 한 편을 만나고는 성급했던 제 생각에 금방 한 자락 한숨을 토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득 하와이 살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아직도 용암이 끓고 있는 화산이 인근인 터라 검정돌들이 지천인 곳이었지요. 자그마한 2층 거실을 제 공부방으로 꾸미고는 한 쪽 구석에 검정돌들을 주워다가 제법 그럴듯한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선물해준 나무 십자가를 올려놓고, 정한 시간 그 앞에 무릎을 꿇어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그마한 돌단을 볼 때마다 나는 야곱의 이야기를 떠올렸고, 너희가 찬양하지 않으면 돌들이 일어나 찬양하리라는 주님의 말씀과 베드로가 주님을 산돌이라 회상하며 설명한 고백도 마음에 그리곤 했습니다.

 

  일상의 하찮은 것들을 토대로 동화를 쓰시는 선배 목사님의 글 중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양도 없고 흔하디 흔한 터라 귀하게 취급받지도 못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선택 받지 못해 늘 외롭던 평범한 돌멩이 하나가 어느 날 하늘 높은 곳에서 계곡을 바라다 본 바람을 만납니다. 그 외로운 돌멩이는 바람에게 하늘 높은 곳에서 보니 햇빛에 반사된 바위와 돌멩이들이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나더라는 말을 듣습니다. 돌멩이는 선택받지 못해 한숨 짓던 자신이 빛나고 있더라는 소리에 어깨를 으쓱입니다. 이내 외로움도 씻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외롭고 캄캄한 밤에도 별님 달님과 정답게 살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작고 평범한 돌멩이 같은 나이지만 하나님의 눈에 보일 내 모습에 대한 적잖은 감격을 맛보게 해 준 이야기이지요.

 

  나는 오늘 돌멩이에 대한 시인의 노래 한 편을 읽으며 하찮은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묵상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돌멩이로 이 땅을 살지언정, 온몸으로 구르며 치열하게 살겠노라고, 그렇게 깨어지면서 더욱더 견고한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합니다. 그것만이 보석처럼 밝게 빛나는 모습으로 님 앞에 서는 비결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