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한카


    아버지 주일 이었습니다. 어느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커다란 도화지를 한 장씩 주고 가족의 얼굴을 그리라고 하였습니다. 모두 열심히 식구의 얼굴을 그리는데 한아이가 그큰 도화지 한가운데 엄마의 얼굴을 그려놓고 그밑에는 언니, 오빠의 얼굴을 그려놓고 끝에 아기 동생의 얼굴을 그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아빠의 얼굴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동정어린 얼굴을 하고는 “너는 아빠가 않계시는구나” 그러자 아이는 “아니요, 아빠 있어요” “그럼 왜 아빠의 얼굴을 안그렸니?” 아이는 도화지의 뒷면을 보여 줍니다. 거기에는 아바의 얼굴이 큼직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선생님은 말합니다. “도화지면이 작아서 뒤에다 그렸구나” 그러자 아이는 대답합니다. “ 아니요 우리 아빠 얼굴은 볼수가 없어요. 아침 세벽에 나가시고 밤에는 우리가 잠이 들었을 때 오시거든요. 우리가 못보는 아빠니까 안보이게 뒤에다 그린 거에요.”

    현대의 바쁜 아빠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참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저 일하는 것이 가정을 사랑하는 것이고 아이들은 어머니가 기른다는 것이 미덕 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들이 자녀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가 그랬습니다. 자녀들이 누구보다 잘되기를 바랐던 분들이 아버지고, 자녀들의 성공이 아버지 어깨의 훈장 이었습니다. 어쩌면 일의 동기 였을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날이 만들어진 동기를 보면 어머니날이 처음 시작된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서 어머니날이 공식적으로 지켜진지 2년후인 1910년5월, 교회에서 어머니날 설교를 듣던 sonora smart dodd 여사는 어머니가 돌아가신후 홀로 6남매를 키우신 고생하신 아버지를 생각 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어저면 그 슬픔을 다 들어내지도 못한 아픔을 가지시고 또 자식들을 사랑하시지만 그 사랑을 다 표현 해 내지 못하시는 마음으로 자녀를 기르신 아버지를 생각하고는 아버지날을 제안 합니다. 그도시 목회자와 스포케인 YMCA 지지를 받고 6월19일에 제정이 됩니다.

    그러자 모두가 남성으로 구성되었던 당시 의회에서 아버지날 제정이 자화자찬 하려는 의도로 오해될까봐 통과가 미루어져 왔고 결국 62년후인 1972년 닉슨 대통령에 의해 공식적으로 제정이 됩니다. 어머니날의 꽃이 카네이션 이라면 아버지날의 꽃은 장미입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붉은 장미를 돌아 가셨으면 흰장미를 답니다.

아버지의 가정에서의 영향력은 눈에 보이지를 않지만 절대적이라고 말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을 보면 위기의 순간에 사라를 누이라 속이고 넘겨 주엇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정에서 자란 이삭의 가정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가르쳐주지를 않았는데 그대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영향력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말한대로 살지를 않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견고한 요새를 가진 자이며, 그 후손도 그로 인하여 피난처를 얻는다”(잠14:26)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아버지의 모습은 자녀들의 삶을 안정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께서는 이세상을 창조 하시고 우리 인간에게 가장 먼저 세워주신 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그 가정의 중심에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대리자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또한 귀한 자녀를 우리에게 선물로 보내 주셨고 언젠가는 하나님께 다시 돌려 드려야 합니다. 말씀으로 가꾸고 믿음의 삶을 잘 이어갈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라는 자리....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 합니다. 같이 가자구요. 그분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