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통(通)하는 삶

by anonymous posted Apr 0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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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산창의비.jpg (백산은 1894년 4월 30일(음력 3월 25일) 각지에서 모여든 농민군들로 본격적인 농민군 부대를 편성하고 호남창의 대장소의 이름으로 격문과 농민군 4대 행동강령을 발표했던 곳이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1989년 백산 정상에 '동학혁명백산창의비'가 세워졌다.)

 

  " ... 농민전쟁 1차 병기 때 호남칭의소가 설치됐다던 백산. 높이 47m로 남동 바닷가 남산과 거반 같으니 어디가면 산으로 대접받기도 힘든 터지만, 사방에 펼쳐진 들판 가운데 우뚝한 이곳의 높이는 숫자로 헤아리기 힘든 역사의 깊은 숨결이 자리한 것이 분명하다.

  아! 이것이 감히 성지(聖地)라 칭하는 곳의 입구이런가? 작은 입석에 적힌 무성의한 표지를 뒤로 엉성하게 포장된 길을 따라 오르려니 여기저기 무성한 들풀만이 그때 수많은 농민군의 함성을 대신하고 있다.

10분 남짓 걸어 올라 정돈되지 않은 잔디밭 사이, 그때 그 함성을 기념하는 동학혁명 백상 창의비가 서있다. 이제는 동네 아이들 놀이터로나 사용될 그곳 좁다란 정상. 허나 당시 지도부가 머무르며 들판 주변 관군의 동향을 파악하며 분주했을, 그리고 가슴 속 깊이 서린 한(恨)을 담아 혁명에의 의지를 불태웠을 그들의 원혼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다.

  아! 순박한 농군의 가슴에 불을 당겨 맹수처럼 돌변케 한 것은 진정 무엇이던가? 순간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비애가 콧등을 맵게 때리고 지나갔다.

  사통팔달(四通八達) 뻥 뚫린 백산 정상에 올라 작은 입간판에 서럽도록 짧게 담긴 그 긴 역사를 되새기며 잠시 숨을 고르니, 낮으나 우뚝 선 내 안의 백산을 오를 수 있었다. 무엇 하나 거스를 것 없이 통(通)한 기운을 맛볼 때, 아! 내 안의 수많은 죄의 씨앗 관군이 이리도 꿈틀대고 잇음이랴. 꿈틀대는 적들을 섬멸함이 가없이 아름다운 내 안의 혁명을 이룸일 터인데, 때로이 적들과 놀아나는 꼴사나운 모습, 그것이 ‘나’이라니...

  거스름 없이 나를 되돌아 볼 백산에 오름이 기도이리라. 막힘 없이 돌아보아 통한 삶을 사는 것이 신앙이요, 그렇게 거침없이 흘러 한 송이 들꽃이 된다면 그 어찌 부활이 아니겠는가?”

  (2001년 8월 12일)

 

  새벽 미명에 잠을 깨면 제일 먼저 하는 것 중 하나가 알러지와의 싸움입니다. 약을 뿌리고, 또 먹고... 막힌 코를 붙들고 이래저래 씨름하는 시간도 제법입니다. 여지없는 씨름 끝에 뚫린 코로 경험하는 신선한 새벽 공기, 우습기도하지만 제겐 작지 않은 은총임에 분명합니다.

  문득 내 안에 우뚝 솟아 성령의 통함을 어렴풋 깨닫게 하고, 죄로부터 자유함의 길을 일러주었던 백산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막힌 코 뚫린 것 가지고 뭐 대단한 소리냐 싶겠지만, 때가 고난주간이니 의미가 새로울 밖에요. 바람처럼 자유한 성령이 그러하듯 사통팔달 통한 삶을 살아야 생기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깨달음을 다시 끄집어 새겼습니다.

 

  골고다 언덕, 서슬퍼런 십자가 위에 내 님이 오르셨을 때,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네가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하나이다.”(눅 24:34)했던 절규가 그의 첫 마디였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오르니 죄로 꽉 막힌 세상이 먼저 눈에 들어오신 게지요. 꽉 막힌 하늘 길, 구원의 길, 축복의 길이 안타까워 십자가로 그 길을 통하게 하신 것이었구요.

  부활의 삶은 통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막혀진 하늘 길을 십자가로 열어 놓았듯, 자기 십자가 짊어지고 막혀진 이웃과의 벽을 허무는 것, 말문을 열고 말길이 통하게 하는 것, 세상 욕망에 사로 잡힌 나의 육(肉)을 영(靈)과 통하게 하는 것, 그렇게 참 자유를 누리는 것, 그것이 님의 간절한 피의 절규임을 새겨봅니다.

  by 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