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세티아 꽃에 담겨있는 얘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멕시코의 어느 마을에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마음 착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항상 어머니의 병을 고쳤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살고 있는 소녀에게 병을 잘 고친다는 명의가 찾아와서는 말을 합니다. “이 병을 고치는 좋은 약초가 있다. 그것을 구해오면 병을 쉽게 치료할 수 있다.” 소녀는 명의가 그려준 약초를 찾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추위와 허기에 지친 소녀는 나무 밑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때 절벽을 바라보니 명의가 말한 하얀 꽃이 피어 있는 것 이었습니다. 소녀는 서둘러 절벽을 오르다가 그만 발이 미끄러져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제 엄마의 병을 고쳐야 해요 나를 도와주세요! ”소녀는 소리치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피 묻은 약초를 건네주는 것 이었습니다. 그 순간 소녀의 상처는 씻은 듯이 나았고 절벽의 하얀 꽃은 소녀의 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그 빨갛게 물드는 약초로 엄마도 낫게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포인세티아~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크리스마스 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흠이 없는 흰 꽃 같은 분이이시지만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린 붉은 꽃이 되신 것입니다.
아기 예수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단순히 조용하고 잠잠하기만 한 그런 평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화평 대신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0:34). 칼은 끊고 자르는 데 쓰는 것입니다. 주님은 역사의 연속선을 검으로 끊으셨습니다. 그로 인해 역사는 BC와 AD로 나뉘었고, 막힌 담을 허물어뜨리셨고, 죄악으로 가려진 휘장을 찢으셨습니다. 저주도 완전히 끊으신 것 입니다. 세상에서는 충격 이었습니다. 예수가 오신 곳에는 마땅히 충격이 있습니다(마 2:3). 기존 질서의 수동적 유지가 그가 원하던 평화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익숙했던 구습의 단절이 마땅히 따라와야 할 행동하는 평화 이었습니다. 그래서 평화의 왕은 구유에서 세상의 역사를 뒤집는 평화를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성탄절입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보지 못하고 외면한 것에 대해, 나만의 안일과 평화를 생각하며 산 것에 대해 회개하는 촛불을 켜야 할 시간입니다. 이제는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찾아 나선 목자들처럼 ,찾아 나서야할 시간입니다. 주위에 병든 자들을~가장 작은 자 들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자들을~오랜 구습에 묶여 자유롭지 못하게 사는 자들을 향하여 말입니다. 먹다 남은 부스러기 시간과 물질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몫을 나누는 것입니다. 포인세티아가 붉게 물들도록 말입니다. 목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