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한카


 

  빗방울하고 어울리고 싶어요

  깨금발로 깨금발로 놀고 싶어요

  세상의 어깨도 통통 두드려주고 싶어요

  - 안도현, ‘낙숫물

 

  놀이터는 고사하고 축구공 하나 변변치 않던 어린 시절이었지요. 그래도 지금처럼 공부에 짓눌리지 않았던 때라,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방을 던져 놓고 동네 공터에 나가보면 하나 둘 친구들이 모여 들어 금새 무언가 재미나게 놀곤 했습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자동차 몇 대 주차하면 그만인 공간이었지만, 말뚝박기, 오징어찜에 갖은 놀이를 다 하고도 모자람이 없었던 드넓은 곳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붉은 벽돌이 자아내는 우중충한 그림자에 종종 걸음 치는 어른들의 뒷모습만 남았지만요.

 

  요즘처럼 방학이 되면 동네 뒷산인 달마산은 온통 아이들 천국이었습니다. 가끔은 걸어서 말죽거리나 봉천동 고개 너머 관악산까지 놀러 가기도 했습니다. 말이 서울이지 어릴 적 친구들은 우리 동네를 흑석리라고 부르며 낄낄 대곤 했으니까요.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은 심심해서 몸살이 나는 날이었습니다. 간혹 우산을 뒤집어쓰고 공터에 모여 약간 비스듬한 곳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에 물길을 내고, 펑퍼짐 아줌마 엉덩이만한 댐도 만들며 놀기도 했지만, 그런 날은 영락없이 아버지에게 혼이 나는 날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된통 혼이 나고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일 나가신 엄마는 언제 오시려나, 비는 언제 그치려나, 기다림에 목에 메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 몸을 던지는 낙숫물과 낙숫물이 만들어내는 물쟁반을 바라보며 심심하다 못해 풀이 죽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는 왜 시인의 생각처럼 낙숫물과 함께 놀 생각을 못했는지….

 

  언제나 자연과 가깝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세상이 친구처럼 나에게 가까운 대상이진 않았나 봅니다. 친구라 함은 함께 노는 것은 물론 서로를 생각해주고 배려하는 것이련만 어릴 적 나에게 세상은 그저 세상이었을 뿐이니까요. 그러니 어린 시절 낙숫물은 기껏해야 심심해서 풀이 죽은 내 마음을 톡 건드리고 달아날  뿐이었지요.

 

  님의 향기와 함께 순례의 길 가고픈 나는, 시인의 노래를 되새김질 하며 처진 세상의 어깨를 통통 두드려주고 있는 낙숫물을 고마워하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 품으니 금새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처마 끝 삥 돌려 물받이를 한 곳이 지천인 터라 낙숫물 만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지만요.

 

  낙숫물 만나기도 쉽지 않은 세상, 자기만 생각하는 인간들로 고통 받는 세상의 어깨를 이제 내가 통통 두드려주고 싶습니다. 한 여름 뙤약볕에 땀 흘리는 길손이 잠시 쉬어가는 느티나무 그늘처럼, 누구든 위로 받고 쉬어 갈 수 있는 시원한 마음자리 내 안에 펼쳐 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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