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한카


인도 언어중에 ‘찰타해, 쥬가드’ 라는 말이 있습니다. 찰타해 라는 말은 ‘충분하다, 그렇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생활속에 젖어있는 단어의 의미를 보게되면 ‘무책임, 본질을 벗어난 단순사고’ 라고 해석을 합니다. 어떤일을 당했을 때 뒤로 미루고, 자기가 책임질일이 아닌 듯 슬쩍 넘어가려는 태도를 말합니다.

책임을 져야할 일에는 부담을 갖고 일단 피해 보려고 하는 심리적인 자기 방어입니다. 그래서 모든일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될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는 다는 것입니다.

 

인도인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아마 100년이상 긴 세월동안 영국 식민지 하에서 책임지는 일보다는 시켜서하는 일만해서 그렇고, 카스트 제도 하에서 윗사람에게 ‘노’ 라고 말할수 없는 삶들이 연속이 되어, 그들의 어떤 인간성을 만들어 냈는지 모른다는 말들을 합니다. 또 하나 ‘쥬가드’ 라는 말은 일상적인 해석으로는 ‘모든 사람이 피해자가 될수도 있고, 가해자가 될수도 있다.’는 것이고 일단 시간을 드리면 않되는일도 없고 되는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극장에 긴줄이 있는데 금방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알고 있다면 그것이 암표이건, 무엇이건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고 허위보고, 탈세를 하더라도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정 보다는 항상 결과를 찾는 다는 것입니다. 좋은 면은 인도인들은 $2500 짜리 국민차를 갖게 되었고 $25짜리 국민 휴대폰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것은 과정을 무시하는 무질서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 가지입니다. 책임질줄아는 신앙, 결과 보다는 과정을 중요시 여기는 신앙, 열매는 하나님이 맺게 해주심을 아는 신앙이 성숙한 신앙임을 말씀 합니다. 요한 계시록 3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 하기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 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 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라오디게아 교회 양옆에는 두 개의 도시가 있었습니다. 오른쪽은 골로새, 왼쪽은 히에라볼리입니다. 히에라볼리에는 따뜻한 온천이 있었고 골로새에는 아주 시원한 샘물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골로새의 찬물과 히에라볼리의 온천이 흘러 만났습니다. 당연히 물은 미지근 했습니다. 바로 이것을 비유로 이 교회를 책망 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에도 책임이 있고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확실한 모습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하나님 책임으로 돌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치코 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008년 리처드 기어가 나오는 영화인데 하치코 라는 개가 자기 주인교수가 죽은 줄도 모르고, 처음날은 3일 절식을 하고,

그후 10년을 기다리다가 죽은 개이야기입니다. 개를 이야기 할 때 보통 충정을 이야기 합니다. 그냥 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에게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가을입니다. 모든 열매 맺는 나무에 과실이 맺는 실과의 계절입니다. 여름의 긴 더위와 과정을 견디어온 나무들이 과실을 맺는 것입니다.

 

이 계절에 과연 내가 맺은 열매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