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지 않고 어이 견디리?
환한 봄 햇살과 파란 하늘을 보고 울컥했다면 누가 믿겠냐 마는, 찌푸린 하늘만큼 무거웠던 겨울을 살며 온통 하늘 탓만 했던 나에게 싱그런 봄의 하늘은 정말 가슴 벅찬 환희였습니다. 제법 기가 꺾인 동장군의 뒷모습을 보며 하늘도 신이 난 걸 보면, 잔뜩 찌푸렸던 하늘도 나만큼 추워했던 게 분명합니다. 파란 하늘, 햇살 한 줌이 이리도 큰 감격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던 양 새삼스럽고 고맙습니다.
말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만큼 소중한 축복도 없는 법, 예전 거제도 살 적에 이웃 섬에 말이 참 잘 통하던 선배 목사님이 있었지요. 한 번은 함께 산책을 할 때였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 높지 않은 울타리 너머, 꽃잔치라도 벌이듯 흐드러진 봄꽃들을 보았습니다.
"저 집은 꽃만으로도 부자네!"
선배님의 나지막한 소리에 뒤통수를 얻어 맞은 양 멍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슴 뛰는 기쁨은 멀리 있지 않음을 새삼 일깨워주신 님의 은총이었지요.
모처럼 파란 하늘, 환한 봄 햇살이 그 때의 감격을 다시 떠올리게 할 즈음, 문득 아직도 움츠려 있는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한참 부끄러웠습니다. 사순절기를 살아가는 나를 향해, 아직도 잠들어 있는 영혼을 깨우라고, 조붓한 자아의 벽을 허물어 생명의 봄 바다에 몸을 던지라고 님은 소리 없이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분홍 구름도 몇 줄 / 동녘 하늘엔 들러리 섰나니, / 이 봄날 대지에 / 씨 뿌리지 않고 어이 견디리? / 베레모 쓴 청년 하나 / 밀씨를 뿌리고 있네"
빈센트 반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을 보고 작고한 시인 서정주 님이 노래한 시의 한 토막입니다.
"이 봄날 대지에 / 씨 뿌리지 않고 어이 견디리?"
오물오물 씹고 또 씹어도 절창 중의 절창인 시인의 노래를 한참 되새기는데, 오호라! 영혼의 봄 사순절기를 사는 순례자의 몫이 곧 씨를 뿌리는 일임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씨앗, 곧 생명의 씨, 사랑의 씨, 화해의 씨를 뿌려 또다른 생명과 사랑과 화해의 열매를 거두는 것, 그것이 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것이요, 한껏 영혼의 기지개를 켜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신 것이지요.
결핍의 조건들만 끄집어 내어 불평, 불만만 늘어놓던 내게, 햇살 한 줌으로도 다시금 감동하게 하셨으니, 이 봄날 대지에 씨 뿌리지 않고 어이 견디겠습니까?
-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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