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한카


  입춘이 벌써 지났다는 권사님의 귀띔에 부쩍 늘어난 졸음의 이유를 알았습니다. 호된 추위 속에도 봄기운은 예외없이 찾아 온 까닭이었습니다.
  봄의 문턱인 입춘(立春)을 지나 어느덧 우수(雨水) 절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입춘이 지나면 동해동풍이라 차가운 북풍이 걷히고 동풍이 불면서 얼었던 강물이 녹기 시작한다.”고 했고, “우수, 경칩(驚蟄)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고 했지요.
  겨우내 닫혀 지고 움츠렸던 마음에 기지개를 켜고 새로이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절기에 우리는 서 있는 것입니다. 이 때 농부들은 논두렁 밭두렁을 태우기 시작했다지요. 겨울 동안 죽지 않고 살아있는 병충해를 박멸함으로 본격적인 영농준비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모처럼 농부의 마음을 품어 내 마음 새로이 다잡을 채비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청아하고 속 깊은 목소리를 자아내는 양희은 님의 찬송을 들으며, 철근공 김해화 님의 시집을 손에 잡았습니다. 헌데 그의 시 ‘새로움에 대하여’가 갑자기 예리한 칼날이 되어 내 마음을 후비는 것이었습니다.

 

  땀과 기름에 절어가며 / 낡아 / 빛바래고 / 너덜너덜해지는 작업복
  벗이여 / 새로움이란 / 새 옷을 갈아입는 것이 아니네 / 이렇게 / 거짓 없이 낡아 가는 것이네

 

  새 마음을 갖겠노라 다짐을 할 때, 나는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덧입으려 했습니다. 새로이 기도시간을 더해보기도 하고, 새로운 곳을 찾아 길을 떠난다거나, 때론 청소를 하거나 머리모양새를 다듬기도 했지요. 헌데 시인은 그런 저에게 눈치 못 챘던 기막힌 한 수를 넌지시 가르쳐 주었습니다. 늘 반복했을 뿐 결코 새로울 것 없던 허울 좋은 새로움에 만족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살아보니 무심한 세월 따라 우리네 몸도 마음도 사랑도 끝없이 빛 바래고 낡아집니다. 그러니 더더욱 새로움을 향한 갈망이 클 수 밖에요. 하지만 시인의 노래는 새로움을 찾으며 혹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없을까?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벗이여 / 새로움이란 / 새 옷을 갈아입는 것이 아니네 / 이렇게 거짓 없이 낡아 가는 것이네

 

  거짓 없이 낡아 가라면….
  오호라, 낡은 세월에 덧칠 된 세상 모든 허접쓰레기들을 다 버리고, ‘처음’에 품었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끝내 잃지 말라는 말은 아닐까요?
  언젠가 예수에 사로 잡혀, 성령을 품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고자 했던 그 첫 마음, 아니 태어나면서 내게 옷 입혀진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금 싹 틔워야 한다고요.

 

  “거짓 없이 낡아 가는 삶”
  한 동안 묵직한 화두로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