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한카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잠 25:11)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을 한다고 해서 다 유익한 말은 아니고 경우에 따라 말이 다르게 들릴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어느 교회에 친교 시간 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카레라이스가 나왔는데 너무나 맛이 있었습니다. 권사님이 드시다가 집사님께 엄지 손가락을 들여 보이며 ‘집사님 오늘 카레라이스 짱!’ 하고 맛을 칭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느날처럼 남은 음식을 싸주시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권사님이 집사님께 물었답니다. ‘집사님 오늘 남은 카레 않싸주는겨 ?’ 그랬더니 집사님 왈 ‘오늘 카레 짜대면요!’

 

말을 잘못 들은 것입니다. 짱 이라는 말을 짜다는 말로 들었으니 음식을 만든 집사님은 기분이 그저 그랬을 것이고, 남은 것을 가져가 더 먹고 싶었던 권사님은 서운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권사님이 짱이라고 설명하자 그제야 말이 잘못 전달이 된것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말을하고 듣는 다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 생각에 가득차면 자기 생각대로 들은말을 평가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도 마찬가지 겠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 하시고 응답 하시기를 즐겨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침묵으로 응답 하시기도 하지만 침묵으로 일관 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와 대화 하시기를 즐겨 하시는 분이십니다. 결코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도리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진리 이기 때문입니다. 벤허 라는 영화에서 로마함대 사령관 아리우스가 벤허 장군이 노예로 팔려와 노를 짓고있는 배에 올라 연설 합니다.‘너희는 사형선고를 받은 몸이지만 이배를 위하여 살려둔다!’ 그러나 적과의 전투에서 배가 파선 당합니다. 노예가된 벤허가 아리우스 장군을 뗏목에서 구조해서 살려 줍니다.

 

아리우스가 묻습니다. ‘왜 나를 살려주는가?’ 그때 벤허가 말하기를 ‘나도 배 때문에 너를 살려준다’ 라는 같은 말로 답을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도 않는 우리....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듣는 우리....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는 우리....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살려 주시고 택해 주셨습니다. 목적이 있겠지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대하여, 바르게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세상의 파수꾼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많이 어지럽습니다. 동성애부부 합헌 결정으로 미국도 이제는 기독교가 골동품이 되어버린 유럽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영혼의 공허해지고 그 빈자리를 강력한 행동지침으로 무장한 이슬람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습니다. 자다가 깰 때입니다. 말씀을 외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