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한카


오만과 편견

 

 

 

장영희

 

 

 

미국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아이가 집에 오면 늘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자니라는 아이에 대해 말했다. 친구는 자니가 어떤 애인지 궁금했다. 어느 날 함께 산책을 하는데 아이가 외쳤다. “엄마, 저기 자니가 오네요, 저 애가 자니예요!”

 

아이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흑인 아이와 백인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나란히 오고 있었다.

 

친구가“어느 쪽 아이? 흑인 아이, 아니면 백인 아이?”라고 물어보려는 찰나, 아이가 흑인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빨간색 자전거 탄 아이요, 걔가 자니예요.”친구는 말했다. 아이 눈에는 흰 얼굴, 검은 얼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빨간색 자전거가 더 신기하고 눈에 띈 모양이라고. 피부 색깔로 사람을 구별하고 외양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어른들이 갖는 편견인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편견'이라는 말은 내 개인적 소견이나 편의대로 남의 겉모습, 첫인상만 보고 성급하게 판단해버리는 경우이다.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오만과 편견’(1813)도 사실은 그녀가 젊었을 때‘첫인상’이란 제목으로 습작했던 작품을 후에 개작한 것이다.

 

영국 하트포드셔의 작은 마을에 사는 베넷가에는 다섯 자매가 있는데, 그중 위의 두 명이 혼인 적령기를 맞고 있다. 아름답고 온순한맏딸 제인에 비해,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지적이고 총명하다. 자칭 ‘성격연구가’인 엘리자베스는 근처에 새로 이사온 젊은 신사 빙리의 친구 다아씨의 첫인상만 보고 신분만을 내세우는 오만한 남자로 생각한다.

 

다아씨는 활달하고 재기발랄한 엘리자베스를 사랑하게 되지만, 엘리자베스는 편견으로 다아씨에게 반감을 갖는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건과 집안 문제에 부딪히면서 엘리자베스는 결국 자신의 편견을 버리고 다아씨가 너그럽고 사려 깊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아씨는 빙리와 제인의 결혼을 주선하고, 이어 다아씨와 엘리자베스도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과 존경으로 맺어진다는 이야기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두 자매의 결혼 성공담에 불과한 것 같지만 이 작품은 이야기를 극적으로 전개하는 절묘한 구성과 함께 정교한 문체, 유머, 그리고 무엇보다 날카로운 성격묘사로 영문학의 백미에 속한다. 그러나 결국‘오만과 편견’에서 오스틴이 다루는 주제는 어떻게 한 사람의 편견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고, 그 편견이 사라질 때에야 진정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편견'이라는 말은 으레‘장애인’에 연결되는 적이 많다. 장애인주간을 맞아 언론에서 서로 질세라 떠드는‘장애인에 관한 편견 타파!’라는 홍보성 슬로건 뒤에 숨은, 작지만 의미 있는 선거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전교어린이회장선거 이야기이다.

 

청각장애 2급의 태민이가 후보로 나설 때 어머니는 혹시나 태민이의 장애가 놀림거리가 될까봐 반대했지만, 반 친구들이 찾아가“태민이가 못하는 것은 저희들이 도울테니 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설득했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달변으로 말할 수 없는 태민이는 단지‘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어린이가 되겠습니다’라는 선거공약을 내세웠고, 당선이 됐다. 다른 네 명의 후보자들도 선거운동 기간 내내 태민이의 장애를 약점으로 거론하는 등의 치사한 일은 하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자꾸‘오만과 편견’의 표피만 키워 나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나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사는 어른들에게, 얼굴 색깔보다는 자전거 색깔을 보고 번지르르한 말보다는 마음을 들을 줄 아는 아이들의 반듯한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