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한카


 

  낯선 곳에서의 생활이 쉽지만은 않은 것처럼, 생활 방식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는 것은 정말 크나큰 도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것에 대해서 호감을 느끼게 마련이고, 낯선 것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거나 불편한 것으로 여기게 마련이니까요. 어쩌면 그게 생명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발전시켜온 내재적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타자(他者)’라는 거울 앞에 섰을 때인 것처럼, 낯선 것과의 만남은 자기를 확장할 수 있는 은총의 기회이지요. 그렇게 타자라는 거울에 비친 나의 이미지를 내가 다시 바라보면서 자신을 새롭게 규정해가는 과정이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생은 여인숙 / 날마다 새 손님을 맞는다. //

  기쁨, 낙심, 무료함, / 찰나에 있다가 사라지는 깨달음들이 / 예약도 않고 찾아온다. //

  그들 모두를 환영하고 잘 대접하라! / 그들이 비록 네 집을 거칠게 휩쓸어 / 방안에 아무 것도 남겨두지 않는 / 슬픔의 무리라 해도, 조용히 / 정중하게, 그들 각자를 손님으로 모셔라. / 그가 너를 말끔히 닦아 / 새 빛을 받아들이게 할 것이다. //

  어두운 생각, 수치와 악의/ 찾아오거든 문간에서 웃으며 / 맞아들여라. //

  누가 오든지 고맙게 여겨라. / 그들 모두 저 너머에서 보내어진 / 안내원들이니. //

 

  13세기 아프가니스탄의 시인 루미의 노래입니다. 천천히 되풀이해서 이 시를 읽다보면 삶의 실상에 조금은 눈을 뜰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현실은 그것이 슬픔이든 기쁨이든 혹은 고통이든 평안이든 모두 저 너머의 세계에서 보냄을 받은 안내원들이란 사실이지요. 물론 그것은 자기 삶을 뿌리를 향한, 중심을 향한 여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겠지만요. 쉽지는 않겠지만 현실의 모든 것들을 나를 찾아온 손님으로 여겨 정중하게 맞아 환대하는 것, 그것이 지혜있는 삶일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 속에서는 갈등이 시작됩니다. ‘다르다는 말과 틀리다는 말을 혼용하고 있는 우리의 말 속에는 낯선 것, 다른 것에 대한 두려움이 무의식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의미보다는 재미에 더 집착하는 젊은이들의 문화도 그렇고, 진정성 있는 신앙보다는 그저 인간적 요구에 의해 교회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때론 믿음을 빙자한 폭력적 양태들을 볼 때 마치 외계인을 바라보듯 하는 나의 닫혀진 시선을 스스로 의식하면서도 쉽사리 그 한계를 벗어나기가 참 어려더라구요.

  그래서 시인 정현종 님은 그에게 다가온 모든 사람도, 모든 사물도 자신을 위한 노다지였을지도 모른다고 노래합니다. 더 열심히 파고 들고, 귀기울이고, 말을 걸고, 사랑해야 할 하늘 보화라 여기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순간이 다아 / 꽃봉오리인 것을, /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라고 노래했지요.

 

  맥없이, 자각 없이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매순간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새 빛을 맞이하기 위해 힘써야겠습니다. 되풀이 다가오는 일상을 끊임없는 반성의 체로 걸러 소중한 것들을 갈무리하는 행위야말로 님이 기뻐하실 신앙의 모습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