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한카


 

  늘 이맘때면 세월이 참 무심타는 타령조의 푸념이 적잖다. 허나 지긋이 자기를 바라본 이라면 무심한 건 오직 흐르는 세월을 그렇게 만든 나였음을 모를 리 없다.

  정신없이 한 해가 흘러갔다. 모름지기 신앙이란 정신을 차리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늘 되뇌었건만,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사는 일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강도를 만나 입은 옷까지 다 빼앗기고, 죽을만큼 매를 맞아 버려진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체 제 갈 길을 재촉한 이들이 있다. 성경은 그들이 제사장이요 레위 사람이란다. 어깨에 제법 힘 좀 주는 이들이다.  그들이 강도 만난 사람을 향한 도리가 무엇인지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들이 외면한 현실은 재빠른 손익계산에 따른 내면의 양심이 아니던가? 마땅히 가야 할 사명의 길 아니던가? 물론 소리치는 내면의 양심에 의해 적잖이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발길을 좌우하는 것은 끝내 가슴이 아닌 머리라는 게 문제다. 그렇다. 그들은 마땅한 사명앞에서도 서둘러 길을 재촉해야 할 만큼 바쁜 사람들이다. 그만큼 인정 받는 사람이다. 허나 누구로부터의 인정인가?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 이성선,  다리

 

  시인 이성선은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을 담담하게 노래한다. 한가롭게 다리를 거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잰 걸음으로 다리 위를 지나 어느새 자취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풍경을 그리던 시인은 어느 순간 마음에 물결치는 일렁임 한 자락을 드러내고 만다.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이것은 바쁜 현실을 살면서도 늘 외로운 시인의 마음 풍경을 담은 것이리라. 이내 잠시 숨을 고른 시인은 혼잣소리로 중얼댄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최선을 다해 사는 것, 당연하다. 허나 가던 길 멈추어 잠시 먼 산 먼 하늘을 볼 줄 알아야 하고, 가다가 쉬며 걸어온 발자취 복기할 줄도 알아야 하리라. 지친 곁님 바라보며 미소 지을 줄 알아야 하고, 힘겨운 그의 어깨 부축할 줄도 알아야 하리라.

 

  새로이 맞이한 2011년이란 다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 이제는 다리를 외롭게 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