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비에게 배우는 ...

by 오솔길 posted May 3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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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jpg  

  "첫째는 배고픈 것을 잊게 해준다. 속이 비면 책 읽는 소리가 더 낭랑하고, 낭랑한 소리 속에 담긴 뜻을 음미하느라 몰두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추위를 잊게 해준다. 소리 내어 읽다 보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몸 안으로 흘러 들어와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셋째는 근심과 번뇌를 없애준다. 책을 읽으면 눈은 글자에 고정되고, 마음은 이치에 몰두하므로 다른 생각이 끼어들 겨를이 없다. 넷째는 기침을 낫게 해준다. 기운이 통하여 막힌 것을 뚫어주기 때문이다."

 

  옛 선비 이덕무가 들려주는 독서의 네 가지 유익함이다.

 

  아무리 액면 그대로 그 유익함을 새겨보고자 해도 쉽지 않다. 아마도 배고픔과 추위는 남의 이야기 된 까닭이요, 근심과 번뇌의 돌부리에 끊임없이 넘어지기는하나 그렇다고 주저앉게 내버려 두지 않는 스승 예수가 곁에 있는 까닭이요, 기침쯤이야 쉽게 다슬릴 수 있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는 배고픔과 추위가 남 이야기 아니었을 테고, 덕분에 기침은 늘 달고 살았을 게다. 해서 근심과 걱정이 끊이지 않았던 가난한 선비였을 터. 그러고 보니 그의 유일한 낙이었을 독서에 대한 예찬론은 서글픈 자기 인생에대해 스스로 건네는 작은 위로가 아닌가?

 

  옛 선비의 서글픈 독서 예찬론이 시리도록 아프다. 춥지도 배고프지도 않은 넉넉함을 살면서도 만물에 새겨진 속뜻 음미하기를 게을리 하고, 삶의 이치, 마음의 이치는 나 몰라라 돈 되는 이치에만 관심을 가지고, 막힌 기운을 통하게 하는 통렬한 진리와의 만남은커녕 오히려 기가 막힌현실에 일조하는 게으름이라니….

 

  아내가 장을 보러 간 사이 마당에 널어놓은 겉보리가 소낙비에 다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아예 상투를 대들보에 묶어놓고 책만 본 옛 선비들의 이야기는 이젠 정말 옛 이야기에 불과하다. 인터넷만으로도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이를 두고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라 한들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허나 하늘 진리를 향한 순례자의 자세가 쉽사리 현실에 무릎 꿇지 않은 체 오로지 삶의 이치를 향해 정진했던 옛 선비의 기백만 같지 않아서야 어찌 천국의 주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