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한카


  "Stand by"

 

  님의 몸에 연결되어 이런저런 숫자와 그래프를 토해내던 기계가 멈추어 있다. 자기도 숨가쁜 레이스를 끝마쳤다는 듯. 그리고 말한다. Stand by

 

  떠나는 자와 떠나 보내는 이가 어우러진 자리. 소리 죽여 흐느끼는 곁님들의 소리를 추임새로 오로지 침묵만이 서로의 아쉬움을 드러낼 뿐이다.

  고단했던 생의 기억들을 하나 둘 내려 놓았지만, 왠지 지워지지 않은 아쉬움이 묻어난다. 사랑해야 할 것을 더욱 사랑하지 못한, 아니 사랑하는 만큼 표현하지 못한 아픔을 토로하는 것일까?

  이제 더 이상 육의 것을 향한 집착은 찾아 볼 수 없다. 움켜쥔 손으로 태어나 더 많은 것을 거머쥐려고 몸부림 쳤지만 모든 게 부질 없는 것이라고, 힘없이 펼쳐진 님의 손은 말한다.

  마지막으로 눈을 마주쳤을 때도, 생의 마지막엔 이렇듯 말이 필요 없는 법이라고, 그저 눈빛 하나면 충qns한 법이라고 말없이 이야기해주지 않았던가.

 

  "주님, 다른 건 몰라도 제발 장례는 치르지 말게 해주십시오."

  목사로 살아오며 새로운 목양지를 맞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기도이다.

  십자가와 부활, 곧 삶과 죽음을 아우른 진리를 전하는 이가, 이쯤되면 도를 넘은 책임회피라 할 수 있을 터.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것도 핑계일 수 있겠지만 사실 그것보다 앞선 까닭은, 삶도 아직 제대로 모르면서 죽음에 대해 말하기가 도대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살아내지 못한 하늘 진리를 선포하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고, 또 얼마나 몸부림 쳤던가? 하지만 아픔을 딛고 자란난 나무는 공이가 더 아름다운 법이듯, 호된 몸살을 앓으며 하나 둘 진리를 체득하는 희열을 알기에 고된 형틀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일 뿐.

 

  아들의 얼굴이 순간 벌겋게 달아오르며 이그러진다. 예견된 죽음이었지만 몸서리치는 슬픔을 참을 수 없다. 하지만 그도 여전히 침묵으로 아버지를 배웅할 뿐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선 나의 님. 머잖아 한 줌 흙으로 돌아갈 그의 육신. 아직 살아있는 듯, 어제와 별반 다른 모습이 아니다. 허나 그는 더 이상 내 곁에 없지 않은가? 변한 것이라곤 온기가 사라졌다는 것, 숨을 드나듦이 사라졌다는 것 뿐인데...

  나 자신을 가리키는 한자 自란 글자는 코(鼻)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숨을 쉬는 것이 코의 몫인 것을 따져보면, 인간이란 모두가 하늘의 숨을, 하늘의 기운을 호흡하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일 터. 삶의 하늘의 영이 내 안에 드나듦이요, 믿음 안에서 이룬 죽음은 단지 그 영과 더불어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리라.

 

  스피노자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네 인생극장에는 신과 천사들만이 관객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늘 영을 힘입어 참된 것, 바른 것, 아름다운 것을 꿈꾸며 최선을 다해 땀 흘리는 것이 관객의 박수를 받을 훌륭한 연기가 아닐까 싶다. 순간 순간이 영원을 잉태한 은총의 시간임을 명심하면서...

 

  자, 다시 한 번 Stand by!

Atach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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